동화 속 마을을 걷다
로텐부르크 & 시라카와고
어릴 때 읽었던 그림책 속 마을은 왜 그리 알록달록했을까? 뾰족뾰족 멋진 지붕을 가진 고풍스러운 성이나 깊은 숲속 요정들이 살 법한 마을을 실제로 여행하는 일은, 오랜 시간 상상으로 구축된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기묘한 경험이다.
중세의 보석, 독일 로텐부르크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주에 위치한 로텐부르크는 슈타우펜 왕조 때 지은 요새를 중심으로 발전해, 아직까지 중세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다. 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도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하니, 1,0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가진다.
제2차 세계대전을 지나는 동안 도시의 40퍼센트가 불타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노력으로 완벽하게 복원되어 옛 모습을 지키고 있다. 독일인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 설문조사에서 자주 1, 2위로 꼽히며, ‘중세의 보석’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다.
로텐부르크 가운데 있는 마르크트 광장. 이 광장을 중심으로 시청사와 시의회 연회관, 교회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시의회 연회관은 천문시계로 유명하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그리고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매시 정각에 종이 울리면 시계 양쪽에 있는 창문이 열리면서 안에 있던 인형이 와인을 들이킨다. 이는 30년 전쟁 중 도시가 위험에 빠진 상황에 처했을 때, 당시 로텐부르크의 시장인 ‘누슈’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했던 에피소드를 재현한 것이라고.
광장에서 제일 높고 뾰족한 시청사에 오르면 로텐부르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나절이면 도시의 모든 곳을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동화책에서 본 중세 배경의 수많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붉은 박공지붕을 머리에 인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걸어도 걸어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어디든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로 잘 관리된 마을 곳곳엔 고운 색깔의 꽃들로 꾸며졌다. 동화 속 이야기가 늘 해피엔딩으로
끝나듯이, 이곳은 행복한 이들의 빛나는 삶이 끝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다.
요정이 살 법한 합장의 마을, 시라카와고
일본 기후현의 시라카와고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던 풍광을 품고 있다. 1500명 정도 되는 적은 인구에 총면적의 96퍼센트가 숲으로 뒤덮인 산골 마을. 이곳은 먼 과거일까? 아니면 신화와 환상이 뒤섞인 또 다른 시공간일까?
먼저 독특한 외양의 가옥들이 눈에 들어온다. ‘갓쇼즈쿠리合掌造り’라는 이 일본 전통의 민가 건축 양식은 책을 펼쳐서 엎어놓은 듯한 초가지붕이 특징이다. ‘갓쇼’는 합장이라는 뜻으로, 그러고 보니 기도하는 두 손을 닮기도 했다.
시라카와고는 겨울의 엄청난 폭설을 대비해 급한 경사로 지붕을 얹어야 했는데, 그것이 지역을 대표하는 특색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삼각형의 가파른 지붕은 짚을 차곡차곡 두껍게 쌓아 만들어 가벼우면서도 따뜻하며, 30년 주기로 교체한다. 기본적으로 3층으로 구성된 이 건축 양식에서 1층은 생활 공간으로, 2층은 작업 공간, 3층은 저장 공간으로 사용되는데 관광객을 위해 개방한 가옥에서 그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다.
시라카와고의 모든 계절에는 일본의 원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봄은 모내기, 여름은 신록, 가을은 단풍, 겨울은 설경으로 특색 있는 풍경을 만든다. 게다가 주민들은 대부분 실제로 일본 전통 가옥에서 생활하며 옛 삶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특히 시라카와고는 갓쇼즈쿠리 마을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그러한 이유로 마을 전체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마을의 형태 보존을 위해 숙박시설 등을 건설할 수 없고, 주차도 제한되기 때문에 시라카와고는 그야말로 아날로그, 자연 그대로의 세상이다. 푸르른 숲으로 둘러싸인, 장난감 모양의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은 이 마을에서는 문득 요정을 만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 에디터 민소연
- 사진 셔터스톡